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-이집트 관계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대한민국]]과 [[이집트]]의 관계. [[이집트]]는 [[대한민국]]과는 1961년에 영사급으로 수교하였고 [[북한]]과는 1963년 대사급으로 수교하였는데 [[중동전쟁]] 당시 [[북한]]이 군사적 지원을 함에 따라 [[북한]]과의 관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. 또 대통령이었던 [[호스니 무바라크]]는 "[[김일성]]이 죽을 때까지는 ([[대한민국]]과) 수교하지 않을 것"이라고도 하였는데, 정말로 1994년 [[김일성]]이 죽고 난 이듬해인 1995년에 가서야 [[대한민국]]과 대사급 관계로 격상하여 수교를 맺었다. 다만 처음부터 무턱대고 북한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것은 아니었다. [[수에즈 운하]] 국유화로 이집트를 착취한 [[영국]]에게 [[수에즈 위기|타격을 주었던 일]]이 세계적으로 널리 보도되면서 해방 10여년 정도가 지난 한국에서도 우호적인 평가가 많았고, [[5.16 군사정변]]으로 집권한 [[박정희]]도 [[나세르]]를 존경해서 자신의 서적인 <국가와 혁명과 나>에서도 나세르를 극찬했을 정도였다. 그러나 이집트가 [[제3세계]]의 주도권을 잡았던 연유로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한쪽을 택하기가 난감했던 지라 영사급 관계만 맺었다가 [[북예멘 내전]]이 터지면서 [[석유]]가 중요했던 한국에서 이집트 대신 [[사우디]]측을 지원했고, 결국 이집트에서 북한과 먼저 수교하게 된 것. 결국에는 석유와 관련한 이런저런 상황이 꼬여서 수교가 늦어지게 된 것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